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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새도 지치면 제 둥지로 돌아간다

창경궁 앞을 지나다 보니, 나무에 작은 새집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촘촘하게 잘도 지었다. 푸른 기운 도는 잔가지가 삐져나온 것이 지은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새 둥지는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짓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 더 신기하다. 그런데 가로수 한 그루에만 새 둥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 옆의 나무에도, 그 옆의 나무에도 둥지를 틀었다. 빈 둥지로 보이는 것까지 하나둘 세다 보니, 무려 열일곱 개까지 세었다. 철새 서식지라도 되는 걸까? 창경궁 앞쪽 가로수에만 이렇게 집중해서 새들이 집을 짓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지인에게 창경궁 앞에 새 둥지가 참 많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새는 건축가다』(차이진원 글)라는 책이다. 새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가 많았다. 새에게는 저마다의 특정한 둥지 형태가 있는데 어떤 새는 건초 줄기로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어떤 새는 고목에 구멍을 뚫어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런 새의 건축본능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주어진다고 한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 잘 짓는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새는 저마다의 환경 적응 방식에 따라 둥지를 배치한다. 이를테면, 나무에서 활동하는 새는 숲에 집을 짓고, 지상에서 활동하는 새는 풀숲이나 바위틈에 둥지를 숨겨두며, 바닷새는 물결 따라 움직이는 수초처럼 보이도록 수면 위에 집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처럼 사람들과 친밀한 새라면, 우리가 사는 지붕의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으며 산다.   새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의 삶과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세상의 모든 가정이 행복과 불행을 번갈아 겪으며 살아간다. 분명한 것은 집안의 가장이거나 부모라면, 어떤 세파가 몰아쳐도 끄떡없이 가정을 보호하려 들고, 될 수 있으면 가정을 튼튼하게 지켜내려 애쓴다는 점이다. 우리 부모님도, 저 윗대 조상님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오늘도 절에 와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원한다. 먼저 가신 부모님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엎드려 절하고, 화목한 가정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려 명상에 집중한다.   물론 나처럼 출가한 경우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출가한 자에게 있어 가정은 그리 큰 의미도 없고, 삶에 미치는 영향도 적은 편이다. 그때그때 시절 인연에 따라 조화롭게 어울려 살다 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생각은 늘 그러하나, 몸은 그러하질 못할 때가 많다. 고향 집 떠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간혹 몸이 아프면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던 우렁이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새도 지치면 제 둥지로 돌아간다더니, 제아무리 출가했어도 마음이 여려지면 제 둥지를 찾지 못한 새처럼 허공을 헤매는 듯하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것이 있다가 사라졌을 때, 더 크게 ‘없음(無)’을 인식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습관처럼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함을 투정한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스스로 가진 게 없다고 괴로워한다. 나도 고향을 떠날 땐 고향이 소중한 줄 몰랐다. 산속에 살 때는 산속 절이 춥고 불편하기만 했다. 공기가 좋은 줄도, 물이 맑은 줄도 모르고 당연한 듯 여겼다. 그러다 산속 절을 떠나 도심에 깃들어 살아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머물고 있던 그 자리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내 곁에 없는 소중한 것들은 어느덧 내 기억 속에만 흔적으로 남았다. 출가 여부를 떠나 지난 생의 기억들을 돌아보면, 새의 귀소본능만큼이나 우리에게도 그런 회귀본능이 있는 것 같다. 치유가 필요한 어느 순간이 오면, 떠나온 둥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곳이 꼭 고향 집이나 부모님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안온하게 쉴 수만 있다면, 어느 빈 둥지인들 어떠랴 싶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 영국의 철학자 조지 에드워드 무어가 남긴 귀소에 대한 의미를 불교에서 찾으라 하면, 곧장 마음의 근본 자리로 돌아갈 것을 권하리라. 중생의 마음을 넘어 부처의 마음자리로 가는 길 말이다. 게다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만 여의면 언제든 가능한 마음자리니, 본질만 꿰뚫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부처 마음 따로 있고 중생 마음 따로 있지는 않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듯’, 그저 마음 씀씀이에 따라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되는 법이다. 자, 그럼 어떻게 마음의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둥지 근본자리 둥지 형태 부처 마음 중생 마음

2024-03-31

[마음 읽기] 5시부터 7시까지의 당신

지인들과 신년 모임을 하던 자리에서 길흉화복을 점쳐준다는 앱을 열고 올해의 운세를 보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시기엔 불안도를 자극하거나 정신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차단하는 편인데 그날은 왠지 내키지 않았는데도 토정비결 앱을 연 후배한테 내 생년월일시를 불러주고 말았다. 2024년의 내 운세엔 안 좋은 말들이 고루 적혀 있었다. 질병과 구설수, 가까운 사람과의 반목과 손절 등등.   부정적인 말들을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재미로 생각하라거나 조심하며 지내면 된다는 말이 그다지 와 닿지 않게 된다. 여기서 어떻게 더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많고 일상과 일생을 흔드는 일들은 인과(因果)로 반듯하게 설명될 수 없는 채로 찾아올 때가 대부분이므로.   내게 수신된 말의 영향권에서 홀연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 달이든 한 해든 그 말이 걸어놓은 시간을 그저 고스란히 통과하는 수밖에는 없다. 아무런 불운 없이 그 기간이 무사히 지나갈 가능성과 내 취약한 장기의 세포 변화로 인해, 사회적 자아의 타격으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으로 인해 인생이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모두 안은 채.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40대 중반의 연극과 교수인 주희가 의사한테 조직 검사를 권유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주희의 유방 초음파 결과를 보면서 의사는 이런 경우 열명 중 한 명 꼴은 암이라고 말한다. 아홉명은 암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말한다. 그때부터 주희는 절망할 수만도 없고 낙관할 수만도 없는 어떤 시간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는 병원에서 나와 연구실로 돌아간 주희의 5시부터 7시까지를, 삶으로도 죽음으로도 가능성이 열리게 된 주희의 두 시간을 다룬다.   주희는 그 두 시간 동안 연구실로 찾아온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복도에서 만난 동료 교수의 푸념을 한참 동안 듣기도 한다. 딸아이를 봐주고 있는 친정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암의 가족력을 묻기도 하고 성적 이의제기를 하러 온 학생을 설득하며 다음에 보면 인사하자고도 말한다. 7시가 다 되어갈 무렵엔 건물 복도를 헤매다 길을 물어온 배달 라이더를 만난다.   자판기와 구름다리를 어떻게 지나 찾아가야 하는지 라이더에게 길을 말해주는 주희와 주희의 설명대로 자판기를 지나 뛰며 길을 찾는 라이더의 모습은 이 두 시간 동안의 만남 중 가장 잔상이 오래 남는 만남이다. 라이더가 숨을 몰아쉬며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문을 연 스튜디오는 그리 오래지 않을 미래의 어느 장소로 연결이 되고, 그곳엔 이전의 어느 날 특정 시간대에 주희가 만났던 이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 장면에 이르러서야 영화는 5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이 주희가 겪어낸 시간일 뿐만 아니라 주희를 만난 이들이 주희를 기억하는 시간일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어떤 시간이 기억하는 사람의 시간이 될 때 무엇이 동반되는 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마지막 인사인 줄도 모른 채로 무심한 인사를 건넸던 그때로, 했어야 좋았지만 하지 못한 말들 사이로, 다시 나눌 길이 없는 차 한 잔의 시간 속으로, 누군가는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당신이 그 선택을 하기 전으로, 누군가 개입할 수도 있었을 상황 속으로, 내가 그 말을 뱉기 전으로, 너를 잃기 전으로, 이제 그만 기다리겠다는 말을 듣기 전으로, 그 전으로, 다시 그 전으로, 계속 되돌아가고, 반복해 겪고,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상대와의 시간을 재구성하고 기억의 틀을 만든다. 우리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만났던 사람이 되기도 한다.   자신한테 가장 중요한 건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제자를 주희는 다만 안아주는 사람이다. 가장 어둡고 힘들 때 자신이 가장 잘 보인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이고 사실은 너무 무섭다면서 엄마한테 안겨 울고 싶은 사람이다. 제자가 들고 온 쿠키를 너무도 맛있게 먹는 사람이고 배달 라이더가 길을 잘 찾을지 걱정하며 오래도록 복도 끝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주희의 모습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과 얘기하며 눈을 맞추고 있을 때의 주희가 아니다. 잠깐씩 혼자 남았을 때, 상대와 시선이 비끼던 찰나의 순간에 김주령 배우의 얼굴에 드러나던 주희의 짙은 피로감이다. 사십 몇 해를 묵어야만 가능한 농도의 피로감. 젊지도 않지만 늙지도 않은 자이기에 더 피해갈 수 없는 피로감. 애증과 연민과 우정과 체념의 시간을 끌어안은 채로도 사랑의 순간을 기억하는 자의 피로감. 나는 어쩐지 그런 지친 눈빛을 한 자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최은미 / 소설가마음 읽기 길흉화복 영향권 특정 시간대 배달 라이더 자판기와 구름다리

2024-02-19

[마음 읽기] 실시간 사회

SNS 일상사에서 우리는 타인보다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나의 반응, 나의 성정이 바뀌고 때로 망가지기도 하는 것을 수시로, 그리고 긴 기간에 걸쳐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좋아요’와 ‘슬퍼요’를 누르는 나의 시간 간격을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있다면 나를 사이코패스라고 여기지 않을까 두려웠다. 1초 전에 누군가의 부음을 접하고 우는 표정을 지었던 나는 다른 사람이 올린 여행 사진에 열광한다. 이 틈 사이에서 오랫동안 정신이 분열될 것 같았던 나는 이제는 분열의 감각마저 사라지는 경지에 들어섰다. 아무도 나의 실시간 반응을 지켜보지 않으니 나도 나 자신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일희일비(一喜一悲)의 감정이 일상을 지배한다. 뇌는 초 단위로 양극단을 널뛰면서 통합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다. 짧은 시간에 서로 먼 감정 사이를 광활하게 오가는 것은 얕게 부유하는 것과 같다. 표현할 수 있는 정서는 희로애락의 이모티콘으로 표준화되어 있다. 표준화는 생각의 회로를 멈춰 세운다.   손가락은 바쁘다. 반면 머리는 바쁘기도 하고 한가하기도 하다(두 감정을 오가는 자신의 분열을 붙잡아두려고 바쁘나 사실 아무 생각이 없기도 하다). 답글을 달지만 이 행위에는 약간 꺼림칙함이 있다. 진심을 다한다 해도 그런 감정 소모에는 짧게는 몇 초에서 길게는 몇 분으로 충분하기에, 이 시간 쓰기의 행동은 내가 지금 거짓에 속해 있다고 말해준다.   우리는 동어반복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겹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작가가 같은 동사를 계속 반복한다면 더 나은 어휘를 표현할 능력이 없는가 의문을 품을 것이다. 번역가 류진오는 작가가 수사적 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쓴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어반복에 멀미가 난다고 호소한다. 그는 어떤 책을 번역하던 중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반복을 피하고 싶어 웁니다. 울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눈물바다가 됩니다. 훌쩍입니다.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콧등이 시큰거립니다. 대성통곡합니다. 오열합니다. 영혼의 둑이 터지면서 그간 차마 소화하지 못했던 것들을 눈물과 함께 방류합니다.” 번역가는 원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는 상투적 어휘를 못마땅해하면서 살짝 표현을 가공하기도 한다.   SNS는 반복이다. 시시각각 서사의 속내는 변하지만 우리가 표현하는 것은 짧고도 얕은 감정의 반복이다. 이 반복을 스스로 애석해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런 순응주의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점점 장사꾼의 감정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무엇을 팔진 않지만 손님 한 명이 가고 나면 곧이어 다음 손님을 받는 식이다. 상행위에 길들여진 사람은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거의 품지 않는다. 시간 쓰기와 정서 쓰기에 대해 개인에게 주어진 자율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부고가 올라오는 페이스북을 보자. 비극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다 보면 평정심을 지키고 싶다. 우리는 덮어씌울 만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것은 빠르고 직접적인 감각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맛있는 음식이나 술이 위로가 된다. 즉 이성으로 곱씹어야 할 것이 감각으로 희석된다. 이처럼 사건 경험이나 목격의 간격을 짧게 유지하다 보면 폐기되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난다. 바꿔 말해 쓰레기가 되는 감정들이다.   최근 나는 친구 동생의 부음을 들었다. SNS가 아니고 장례가 끝난 후 직접 만나서 들었다. 2시간 동안 대화하며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다가 웃었다. 일희일비이지만 이건 온라인상에서의 그것과는 달랐다. 죽음은 슬프다. 하지만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일상의 이야기가 갑자기 끼어든다. 잠깐 잊고 우리는 웃는다. 다시 화제의 중심이 슬픔 쪽으로 이끌리고 상대의 동요하는 정서, 촉촉한 눈매가 나에게 스며든다. 나도 한마음이 되어 운다. 그날 감정은 여러 번 출렁였지만, 그래도 최소 2시간 동안은 출렁임이 지속되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둘이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평상시의 회복을 49재 이후로 미루었다.   SNS는 아니지만 단톡방 역시 종종 동감을 강요한다. 우리는 무반응을 견디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거부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멤버가 소수로 한정된 단톡방에서는 각자가 반응해야 할 몫이 n분의 1로 정해져 있다. 몫도 몫이지만 반응의 속도 역시 중요하다. 매번 뒷북을 칠 순 없기에 답글을 적지만, 만약 침체된 상태라면 쓰는 자아와 나는 분열된다. 이런 분열이 여러 개의 단톡방 사이에서 다시 반복된다. 정서적 교감으로 감당할 수 있는 단톡방이 몇 개인지는 모르나, 최근 제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방이 개설되면 기존 방 하나에서 소리 없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 사실을 누군가 알아차리면 감정적 반응과 추측을 짧고 격렬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실시간 사회 실시간 반응 실시간 사회 감정적 반응

2024-02-11

[마음 읽기] 설계를 잘하려면

‘설계’는 건축과 금융 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다. 치수를 정확히 재 도면을 설계하고,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연금을 설계하는 식이다. 건축은 내게 너무 먼 전문 영역이라 제쳐두고, 재테크는 일반인이라도 늘 염두에 두는 일이니 후자의 설계를 생각해보면 보통 투입해야 할 돈의 양과 기간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시점에 얼마의 돈이라는 이미지는 내 피부에 밀착되는 느낌이 없고, 먼 일 같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 설계는 지적 흥분을 동반한 것이어야 할테니 이런 식으로 설계를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를 비슷한 뉘앙스의 ‘기획’이란 말로 바꿔보자. 기획의 핵심은 디테일에 있고, 자기 분야에서 세밀하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승패와 재미 둘 다를 결정한다.   기획할 때 사람들이 많이 범하는 오류는 일반화다. 책 편집자들은 저자를 발굴하면서 예비 필자에게 맞는 기획서를 작성한다. 어느 날 한 편집자가 ‘30대, 여성, 해외 거주’라는 기획서를 들고 왔다. MZ 세대의 작가, 번역가, 편집자들이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일하는 추세라 세 키워드의 조합은 흥미로워 보였다. 이때 다른 편집자가 “‘퇴사하겠습니다’류의 에세이는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나요?”라는 피드백을 했다. 이 기획이 ‘퇴사’라는 용어로 압축되자 마법은 현실로 쪼그라들었고, 서사는 사라졌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해 어떤 이는 “그냥 12·12 쿠데타가 시곗바늘의 움직임에 따라 전개돼”라고 축약했는데, 이게 주변 사람들의 영화 볼 의욕을 떨어뜨린 것과 비슷하다. 기획의 핵심은 착상에 있지 않다. 연말마다 트렌드 책을 읽어 거기서 짚어주는 내용을 머릿속에 입력해도 자기만의 트렌디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기획자가 버려야 할 것은 어떤 사안을 한 단어로 요약해버리는 습관이다.   기획은 요약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세밀함이 그것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참조 사례로 소설가의 기획을 들여다보자. 글은 구조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구조는 뼈대이니 중요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가끔 문체를 장식물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문체는 결코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며 나무 골조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보코프는 “문체란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자신의 버릇, 속임수, 특징을 모두 문체에 녹이며, 거기에 묘사나 이미지가 덧붙여져 작품은 전진한다. 즉 문체는 엔진과 같다.   이를테면 중국 소설가 츠쯔젠은 뛰어난 색채 감각을 노랫말 같은 문체로 구사하고, 그게 중국 북방의 자연을 형상화해 독자의 가슴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청포도 두 알 같은 눈두덩이” “누런 가을처럼 늙어 있는 날들” “오래된 낙엽처럼 얼굴 위를 기어다니는 검버섯”은 그가 작품 속 등장인물의 생애를 연장시키는 방법이다. 츠쯔젠의 이런 작품을 “동화처럼 순수하다”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가 써온 100편의 단편소설은 색이 바래진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설계할 때 먼저 숫자를 버려보자. 내가 아는 이십대의 헤어디자이너는 부지런해서 퇴근 후에도 남아 밤 늦게까지 커트 연습을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독서로 하루를 연다. 하지만 책에 빠져들까봐 타이머를 켜고 딱 30분만 읽는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정해놓으면 평범함의 진창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신의 클리셰를 없애려면 실용적인 시간 쓰기에서 벗어나는 게 첫 번째로 할 일이다.   그렇다면 기획을 하는 데도 시간을 에둘러 가는 길, 즉 우회로가 적용될 수 있을까? 내가 잘 아는 출판 분야를 예로 들면, 기획할 때 조급하면 저자를 놓칠 수 있다. 수많은 편집자가 신문, 블로그, 유튜브의 콘텐트를 보고 그 창작자에게 책을 펴내자고 제안한다. 제안받은 사람은 시간을 끌지 않고 결정하기에 서두름이 관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판에 박힌 제안서는 많은 작가와 다시 만날 기회를 놓치게도 만든다. “작가님을 평소 존경했고, 그간 펴낸 작품을 빠짐없이 읽었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갈고닦은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 예컨대 작가 조지 손더스처럼 단편을 사랑한다면, 그 감정을 직접적 표현으로 발설하기보다 대상 작가의 설계물을 하나하나 뜯어 분해한 뒤 그것을 역설계해보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섬세한 붓질을 가하고, 달빛의 그림자도 드리우면서 작가의 건축물 옆으로 다가가는 신작로를 내는 것이다.   설계는 고유의 구조, 리듬, 색채 등을 띠어야 한다. 이것들은 세상의 수많은 것을 재료 삼아 만들어지기에 현실과의 접촉도 중요하지만, 한편 혼자만의 기량 연마도 중요하다. 나의 붓질이 거칠면 그 캔버스의 인물들은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혹은 작가의 붓질 아래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설계 디테일 모두 문체 시간 쓰기 구조 리듬

2024-01-15

[마음 읽기] 운명이 당신에게 나쁜 카드를 주었는가

하루하루가 쌓여 달이 되고 계절이 되더니, 이내 해가 바뀌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 많은 것들이 허망하게 자리를 잃고 사라졌다. 무탈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지난 한 해는 돌풍에 휩싸이지 않고 그냥저냥 견뎌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사이 떠난 이들의 자리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풍경으로 무심히 채워졌다. 이것이야말로 무상(無常)한 변화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제 발밑을 보라 했던가. 사실 내 삶은 해가 바뀌어도 딱히 변한 것은 없다. 오늘도 나는 작은 암자에서 부처님을 뵙고 향을 올린다. 이른 아침, 찻물을 다리며 문득 드는 한 생각, ‘올 한해를 지혜롭게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힘들어도 괜찮은 척, 좋은데도 별일 아닌 듯 덤덤한 척, 불편해도 신간 편한 척!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수행자에게는 미덕이 될 때가 많다. 물론 그 덕에 꽤 잘 다듬어져 제법 의젓하고 기댈 만한 사람으로 비출 때도 있다. 그럼 계속해서 그렇게만 살아가면 괜찮을까?   제주도 〈원천강본풀이〉에 이런 무속신화가 전해온다. 들판에 홀로 버려진 여자아이 얘기다.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난 날을 모르니, 오늘을 생일로 정하고 이름도 ‘오늘이’라고 지었다. 당장 하루가 걱정인 오늘이는 부모가 원천강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게 된다. 마치 〈화엄경〉에서 구법여행을 떠나는 선재동자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이는 부모를 찾아 남쪽으로 가다가 흰모래 별천강에서 한 도령을 만났다. 푸른 옷을 입은 도령은 자신을 장상이라고 밝히며, 글을 읽으라는 옥황의 분부로 종일 책만 읽는다고 했다. 원천강 가는 길을 묻는 오늘이에게 방향을 일러주고, 그 다음은 연못에 가서 연화나무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자신은 밤낮없이 글만 읽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운명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연못을 찾아간 오늘이는 청수 바닷가에 사는 이무기를 소개받는다. 알고 보니 이 어여쁜 연화나무에게도 고민은 있다. 겨울에는 뿌리만 살아 있다가 봄이 되면 꽃이 피는데, 왜 맨 윗가지만 피고 다른 가지에는 꽃이 피지 않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무기는 오늘이에게 “남들은 여의주 하나만 물어도 용이 된다는데, 나는 세 개나 물고 있는데도 왜 승천을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그리고는 장상이처럼 매일 글만 읽는 소녀, 매일이를 소개해주었다. 매일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답답한 처지를 부탁하며, 목적지에 가다 보면 구멍 난 바가지로 물을 퍼내며 울고 있는 시녀가 있을 거라고 했다.   시녀의 딱한 사정을 본 오늘이는 정당풀과 송진으로 바가지의 구멍을 막아주고 옥황께 축도한 후에 물을 대신 퍼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시녀는 원천강까지 오늘이를 데려다준다. 드디어 원천강에 도착, 그러나 문지기가 매정하게 발걸음을 막아섰다. 절망한 오늘이는 원천강 앞에서 통곡한다. 그 구슬픈 통곡 때문이었을까? 굳게 닫힌 원천강의 문이 열린다.   고생 끝에 부모를 만난 오늘이는 그간의 일들과 부모의 사정을 알게 되고, 늘 지켜보았다는 위로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부모를 만나면서 큰 성장을 이룬 것이다. 현실이 제아무리 고달파도 꾸준히 살아야 할 이유가 이것인가 싶은 대목이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이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들의 괴로운 운명을 풀어준다. 중요한 가르침은 여기 담겼다. 먼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괴로워하는 매일이와 장상이에게는 부부의 연을 맺어준다. 서로 사랑하게 하여 외롭지 않게 해준다.   꼭대기에만 꽃이 맺히는 연화나무의 고민에 대해 오늘이는 우듬지 꽃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따주라고 했다. 그렇게 연못에 있는 우듬지 꽃을 다 솎아주니 가지마다 꽃이 만발한다. 처음 핀 꽃에만 애지중지해서 다른 꽃들이 피기 어려웠던 것이다. 소중한 것을 내어주어야만 더 풍성해진다는 가르침이다.   이러저러한 절박한 삶의 해결방책을 읽으며 지혜롭게 사는 것에 해답을 얻은 듯 나는 기뻤다. 지나친 재물의 소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이룬 것들에 대한 애착이 크면 클수록 그다음 다가올 행복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오늘이의 신화를 읽으며, 올 한 해를 꾸준히 살아갈 것을 다짐해본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도 좋고 높은 이상을 꿈꾸어도 괜찮다. 다만 사랑은 누구에게나 힘이 되지만, 한편 너무 지나치거나 많이 소유하는 것은 장애가 된다. 비워야 할 것을 비우지 못하는 것이 앞길을 막기 때문이다. “운명의 여신이 당신에게 나쁜 카드를 주었는가? 그렇다면 지혜를 발휘하여 이겨라” 영국의 시인 프랜시스 퀄스의 메시지와 같이 갑진년에는 푸른 빛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처럼 모두가 지혜로 빛나는 삶 되기를 소망한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운명 카드 오늘이의 신화 시인 프랜시스 청수 바닷가

2024-01-07

[마음 읽기]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각

“뉴욕 여행하면서 어떤 게 가장 좋았어?” “혼자 떠난 거,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각.” 뉴욕 현대미술관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할렘의 재즈가 나올 줄 알고 물었던 친구는 놀라는 기색이었다. 다른 문화를 접하려고 여행할 때 나도 남들처럼 책과 자료를 뒤져보지만, 가장 오래도록 남는 것은 언제나 지식보다 내면의 느낌이다. 가족이나 직장을 두고 가도 자기 자신은 두고 갈 수 없고, 이국의 밤 골목에서도 내 그림자는 늘 나를 뒤쫓는다.   비영어 사용자, 유색인종, 젊지도 늙지도 않은 40대 후반의 나이. 이것이 내가 가을에 열흘간 뉴욕에 머물면서 늘 의식한 조건이다. 이 세 조합이 가져온 무명의 감각은 발가벗겨진 느낌을 주었고, 그건 작은 희열을 만들어냈다.   왜 희열일까. 쓸쓸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감정이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첫째, 평소 능력치를 넘어 주어지는 책임과 평가에서 벗어나 내 실체를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노력이 소소한 열매를 맺으면 곧 더 높은 기대가 뒤따른다. 사회 경력은 대체로 안간힘을 써서 얻어낸 것이다. 그게 자신과 동일시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를 인정해주는 동료나 가족 없이 여행하면 과장된 내가 쭈그러든다. 난쟁이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커 보이고 세상과의 거리도 더 벌어져 사유할 공간이 생긴다. 혼자이면 부서지고, 부서지면 열린다. 거기서 나만 아는 나를 목격하는데, 그런 헐벗음을 보는 게 꽤 괜찮다.   둘째, 같은 인종과 같은 업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면 정체성이 날로 비대해진다. 반면 뉴욕에서는 피부색과 체형만으로도 나는 ‘표준’에서 비껴나 있다는 감각이 부여된다. 가이드로 만나서 할렘 거리를 같이 걸었던 흑인 래리 핸더슨의 겉모습만으로도 취향과 창의성이 엿보여 신선했으며 내 안의 무언가를 들여다볼 창을 열어주었다.   셋째, 영어를 쓸 때 경직되는 것은 나를 소외의 불안으로 내몬다. 자신을 지탱하던 단단한 세계는 없어지고 땅에 발 디딜 때마다 비틀거리는 감각을 느낀다. 게다가 단일 언어 사용자는 융통성이 줄어든다는 생각과 함께, 모국어의 문체나 언변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갑자기 담장은 높아지고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은 좁고 어두워진다.   이처럼 내가 보잘것없다는 자각은 곧 두 가지 발견으로 이어진다. 첫째,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찬쉐의 소설 『신세기 사랑 이야기』에는 추이란·샤오위안·미스터 유·웨이보 등 온천여관의 접대부 여성들과 이 서비스의 이용자, 그리고 애인 없이 못사는 여러 인물이 나와 이야기를 거미줄처럼 엮는데, 작가가 뿌려놓는 실마리들을 따라가노라면 이렇게 표면을 겉도는 삶을 사는 이들이 알고 보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온 사람들’임을 깨닫게 된다. 나 역시 내가 ‘죽도 밥도 아닐’ 때 타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둘째,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타인의 호의와 친절에 더 많이 기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여행하고 돌아온 이들은 “리스본 사람들은 친절해” “교토 사람들은 불친절해”와 같은 말을 곧잘 한다. 친절은 상대가 누구인가와 상관없이 베푸는 이의 성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로스트 재팬』의 저자 알렉스 커는 도쿠시마현과 고치현 경계에 위치한 이야 계곡을 여행하면서 왜 이 지역 사람들은 유독 친절할까를 거듭 생각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인구밀도가 낮고 복잡하지 않은 “산악 지역이 평야 지대보다 친절한 사람들을 만들어낼 개연성이 있다.” 그들은 집단 경작을 하지 않아 경쟁을 덜 하고 사냥하거나 나무하며 먹고살기 때문에 독립성이 강하고 여유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교토 사람들은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끈을 부여잡고 살기에 매사 긴장 상태이고 친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자는 타인이 늘 호의를 베풀어주길 임의로 기대할 수 없으며, 친절은 어쩌면 베푸는 이의 특권이다. 그럼에도 대략적인 가늠을 하자면, 자신이 부른 택시가 제때 오지 않아 손님의 시간을 낭비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만났던) 리스본 식당의 직원 주앙과 같은 인물은 신이 예비해둔 선물처럼 어느 도시에나 몇 명씩은 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각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혼자 한 여행에서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다. 우리의 기억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것과 큰 관계가 없어 집에 돌아오면 어느덧 이 모든 것이 ‘타국에서 나는 특별한 존재였다’는 감각으로 뒤바뀐다. 가로수가 온통 상수리나무뿐이라 지루했던 파주출판도시가 예뻐 보이고, 낮엔 길가에 사람이 거의 없어 스산했던 이곳이 갑자기 뉴욕의 뒷면처럼 여겨지는 등 내 다리와 모든 기억과 감정이 나 자신에게 매우 우호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아무것 느낌 뉴욕 현대미술관 비영어 사용자 할렘 거리

2023-12-11

[마음 읽기] 고구마같이 생긴 달

아침저녁으로 차고 맑은 바람 불어오니 과연 시월이다. 뜨거워진 머리를 식혀주고, 몸 곳곳에 채워지는 염증도 호호 불어주는 가을바람. 그 덕에 숨 쉴 만하니 달빛 또한 진하게 느껴진다. 멀리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이지러진 달이 손톱만 해졌다.   모처럼 밤 산책 나온 사람들 사이로 한강을 걸었다. 강은 그대로인데 달빛은 유유히 흐른다. 문득 낮은 음성으로 ‘임술지추(壬戌之秋)’로 시작하는 ‘전적벽부(前赤壁賦)’를 호기롭게 인용하던 벗이 떠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불러 세웠다. 멈추었으나 그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다. 아무렴 어쩌랴, 아 시원해라. 그간 거닐던 숱한 강변이 한눈에 스쳐 지나간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의 강이든 강바람에는 다 닮은 구석이 있다. 시원하면서도 애잔하고, 가볍다가도 금세 맘이 축축해지는. 비록 적벽은 아니지만, 계묘지추(癸卯之秋)에 거니는 한강변도 그럴싸하다.   이렇듯 한참 운치에 빠져 있는데, 지인에게서 고구마순을 볶아오겠다는 문자가 왔다. 훗훗. ‘전적벽부’를 감상하는데 고구마순 볶음이라니, 나도 모르게 귓가에 웃음이 걸렸다. 말 나온 김에 고구마 얘기나 해드려야겠다. 두어 달 전, 범어사에서 무비 큰스님을 친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학 스님으로부터 들은 낭백(浪伯) 스님의 환생담이다. 동래관찰사 조엄(1719~1777)의 실화라 한다. 사연은 이러하다.   불교가 핍박받던 조선시대, 범어사에 낭백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스님은 가난한 백성을 위해 밭을 개간하여 야채를 심어 먹게 해주고, 샘을 파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었으며, 밤에는 짚신을 삼아 행인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억불정책으로 날이 갈수록 부역과 핍박이 심해지니, 스님께서 원(願)을 세워 기도하기를, “빨리 이 몸을 바꿔 다음 생에는 높은 벼슬에 올라 나쁜 제도를 없애리라” 하였다. 그리 작정한 스님은 숲속을 사흘간 헤매다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육신을 보시하고 생을 마쳤다.   입적하기 전 스님은 대중 앞에서 세 가지 서원을 했다고 한다. 첫째, 관리들이 절에 오면 꼭 일주문 앞에서 내리는데, 스님은 아래쪽 어산교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둘째, 입적한 뒤 쓰던 방을 봉해두면 훗날 찾아와 직접 열 것이라 했으며, 셋째, 절에 어려움은 없는지 주지에게 물어 해결할 테니,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환생해서 온 줄 알라는 말씀이었다.   그 후 40여 년이 지나 제자들조차도 노승이 되었을 무렵, ‘조엄’이라는 한 높은 관리가 찾아왔다. 그는 상례를 깨고 어산교 앞에서 말을 내려 절까지 걸어 올라왔다. 법당을 참배한 뒤 도량 구석구석 텃밭까지 둘러보고는 자신이 쓰던 방으로 가 폐문을 뜯었다. 문을 열고 바라보니 시선이 머무는 그 자리에 ‘문을 연 자가 곧 문을 닫은 자니라(開門者是閉門人)’라고 쓰여 있었단다. 즉 문을 연 자 조엄이 바로 문을 봉한 자 낭백 스님이라는 얘기다.   전생에도 많은 이들을 구하며 생을 바친 스님은 다시 태어나서도 자신이 서원한 대로 살았다. 낭백(조엄) 스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오직 백성이었다. 그분의 유산 가운데 하나가 고구마다. 통신사로 대마도에 갔다가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보급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사연이다.   용학 스님께 이 재미난 얘기를 들었는데, 생뚱맞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세상만사가 다 꿈이련만, 낭백 스님도 분명 알고 계셨을 텐데, 그러한 줄 알면서도 저리 생을 바꿔가면서까지 보살행을 실천하시니 그 원력이 실로 대단해서다. 특히 계급사회인 조선 땅, 굶주린 백성, 핍박받는 출가자, 어느 것 하나 흡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현실에 맞게 구상하고, 구체적으로 자비를 실천하셨으니 말이다. 마음만 고요하면 되는 것처럼 쫑알거리던 나는, 종교가 행해야 할 깊은 뜻은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혜능 스님은 『육조단경』에서 “불법(佛法)이란 세간에 있는 것이며, 세간을 떠나서 불법을 찾는 것은 토끼의 뿔을 찾는 격이다”라고 했다. 고통바다인 이 사바세계가 곧 진리의 바다라는 뜻이다. 결국 우리가 각자 머무는 자리에서 지혜와 자비를 펴는 것이 곧 진리를 구하는 길이다.   앗, 고구마! 달이 고구마로 변했다.   세상은 무상하며, 그 어떤 것에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것을 알기에 현상계에서는 더 빠른 변화를 감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삶도 어디쯤에선 끝날 것을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기왕에 태어났으니, 어느 정도는 자비를 실천하다 떠나면 좋겠다. 거창하게 깨달음을 논하지 않고도, 보살행 운운하지 않고도 그저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나누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곧 깨달음이요, 보살의 삶일 테니.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일본 고구마 고구마 얘기 고구마 종자 무비 큰스님

2023-10-15

[마음 읽기] 가을 텃밭과 작은 정원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가을색이 확연하다. 앞집 무화과나무 밭에는 무화과나무의 일이 다했다. 열매를 모두 딴 밭에는 잎사귀가 떨어져 뒹굴고 무화과나무 아래 드리워져 있던, 무성하던 그늘도 구름처럼 다 흩어졌다. 내 기억에는 아직도 푸른 잎사귀를 매달고 있던, 무화과가 익어가던 여름날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때를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이 시 ‘입구’에서 표현했듯이 ‘첫 꽃이/ 피기 직전의 순간, 그 어떤 것도/ 아직 과거가 되지 않은 그 순간’을 기억으로부터 소환하는 일일 것이며, 당시에 있었던 ‘임박한 힘’을 아직 느끼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실로 나는 잎사귀를 떨구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면서도 무화과나무의 성장과 그 성장의 정점을 떠올리고 있으니 시간의 흘러감과 계절의 바뀜은 매우 신속하다고 할 것이다.   나는 졸시 ‘시월’을 통해서 이즈음의 정취를 노래한 적이 있다. ‘수풀은 매일매일 말라가요 풀벌레 소리도 야위어가요 나뭇잎은 물들어요 마지막 매미는 나무 아래에 떨어져요 나는 그것을 주워들어요 이별은 부서져요 속울음을 울어요 빛의 반지를 벗어놓고서’라고 써서 가을의 그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해가는 시간의 빠른 이동을 노래했다.   집터에 딸린 텃밭에도 가을이 왔다. 어제는 오이와 토마토의 마른 덩굴을 걷어냈다. 노란 오이꽃이 피던 때와 아침마다 오이를 따던 날이 있었고, 붉고 둥근 토마토를 소반에 한가득 따던 날의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그런 날들은 마치 백화(百花)가 가득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올해 마지막으로 두 개의 가지를 더 땄고, 부추를 베어 툇마루에 앉아 다듬었다. 그러곤 호미를 들고 다시 텃밭에 가서 당근을 캤다. 땅속에 묻혀 있던 당근은 모두 손가락 세 마디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당근의 씨를 뿌릴 때 간격을 두지 않고 너무 많이 뿌린 탓이었다. 물론 그 후에 솎아내기를 해줬지만. 뽑아온 당근을 보고 식구들이 웃었다. 내년에는 당근 농사를 훨씬 잘 지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나도 속웃음을 웃었다.   오이와 토마토와 가지와 당근이 자라던 곳에 고랑을 새로이 내고 배추 모종을 심고, 파 모종을 심었다. 무 씨앗도 뿌렸다.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뿌리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싶었지만, 옆집 할머니가 제주에선 지금 해도 늦지 않는다셨기에 그렇게 했다. 텃밭에는 오이와 토마토와 가지와 당근의 일이 끝나고, 배추와 파와 무의 일이 시작되었다.   작은 정원에도 가을꽃이 만개했다. 오일장에 가서 월동이 가능한 야생화 화분을 사 오기도 했다. 오일장에는 국화 화분과 구절초 화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절초의 향을 맡고 있는 내게 꽃 화분을 파는 가게 주인은 “가을에는 국화가 제일이지요”라며 화분을 사서 가길 권했다. 나는 “작년에 여기서 국화 화분을 사서 마당의 꽃밭에 심었더니 꽃이 막 피고 있어요”라고 말하곤 국화 화분 대신 바늘꽃 화분을 두 개 샀다.   그제는 해바라기를 뽑아 씨앗을 받았다. 검게 그을린 얼굴을 아래로 푹 숙이고 선 해바라기는 마치 비탄에 잠긴 듯했다. 여름날 작열하는 태양을 사모하던 그 낯빛은 온데간데없었다. 받아둔 씨앗은 내년에 파종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씨앗으로부터 싹이 움트고 줄기가 서고 꽃이 피어 또 태양을 사모하게 될 것이다.   텃밭과 정원을 가꾸며 살다 보면 이 좁은 땅에서도 생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식물은 조금씩 말라가고, 어떤 식물은 싹이 움트고, 또 어떤 식물은 땅속에서 발아를 꿈꾼다. 앞서 인용한 시인 루이즈 글릭은 시 ‘야생 붓꽃’에서 이렇게 또 읊었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그대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걸/ 나 기억하고 있다고.//(……)// 끔찍해, 어두운 대지에 파묻힌/ 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다른 세상에서 오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너,/ 네게 말하네, 나 다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망각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찾으러 돌아오는 거라고’   야생 붓꽃의 음성을 빌려 말하는 시인은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고, 고통의 출구가 있고, 죽음과도 같은 그 고통의 어두운 대지에서 야생 붓꽃이든 어떤 식물이든 어떤 생명이든 다시 움트고 탄생하는 것은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이고, 또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가을 텃밭과 작은 정원에도 생명이 있으니, 그곳에는 많은 말과 목소리가 있는 것일 테다. 설령 우리가 가을을 조락의 계절이라고 대개는 생각하더라도 자세히 듣고 보면 목소리가 붐비고 있고, 또 미세하게 목소리가 태어나고 있는 것일 테다. 이점을 가을 텃밭과 작은 정원으로부터 배운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텃밭과 가을 가을 텃밭과 텃밭과 정원 앞집 무화과나무

2023-10-09

[마음 읽기]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뉴욕은 어디에나 있다. 크라카우어의 『역사』를 펴니 서문을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폴 크리스텔러 교수가 썼고, 한밤중 침대에서 하드윅의 『잠 못 드는 밤』을 펼치니 이 책은 뉴욕의 뒤틀린 기억과  초상화 그 자체였다. 편집하며 읽은 원고의 저자인 비비언 고닉·그레이스 조·윌리엄 헬름라이히는 모두 뉴욕의 아들딸이다. 스타일과 문화, 정신의 푯대가 되곤 하는 이 도시에 나는 올 9월 처음 가볼 계획이다. 하지만 여행은 두어 달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1년 전 갔던 에든버러는 견학을 목적으로 했고 일행과 함께 움직였기에 나는 도시의 바글바글한 풍경만 보고 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한순간도 은둔자인 적이 없었다. 들뜸과 피상성이 지배한 시간이었다. 그 기억을 덧씌우려고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계획을 세웠고, 올여름의 읽기·말하기·상상은 모두 뉴욕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여행의 큰 재미는 ‘준비’에서 시작된다. 기초체력 다지기인 셈인데 이번엔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행』『전사자 숭배』『잠 못 드는 밤』『역사』 『저스트 키즈』가 근력을 만들어줬다. 가장 관심 가는 것은 뉴욕의 사회 풍경이다. 최근 몇 달 새 가장 많이 들은 뉴스 중 하나는 바다 건너 탈출하다가 익사한 이민자들 소식이었는데, ‘다름’을 겁내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맨 처음 걸으려는 곳도 20세기 초 동유럽·아일랜드· 이탈리아 출신의 저소득 이민자들이 살았던 동네다.   “이미 말하고, 읽고, 듣고, 꿈꿨던 것과 유사하게” 혹은 “책에서 표현하는 글과 정반대거나 아주 유사한 빛나는 삶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나는 그 도시에서 이웃집에 초대받을 만하지 않거나 진지한 사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무리에서 겉도는 이들도 만나게 될까. 그 어떤 사회적 풍경이 펼쳐지든 그건 지금 나무나 풀보다 더 내 관심을 끌어당긴다.   그다음에 갈 국립 9·11 추모관은 어떤 기분을 불러일으킬까. 몇 년 전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갔을 때 비통한 심정이 흘러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지만 여행자로서 곧 그런 기분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어느 도시에나 떠도는 혼백과 출렁이는 만가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필연적으로 마주칠 텐데, 이때 조지 모스의 『전사자 숭배』는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의 귀한 가이드라인이 돼줄 것이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묘지 참배인들을 ‘전장 순례’하는 이와 ‘전장 관광’하는 이로 대조시키며, 후자가 비판의 대상이 됐던 역사를 짚는다.   영국에서는 전사자 기리는 방법을 두고 폭넓은 논쟁이 있었는데, 핵심 사안은 비탄에 잠겨 추모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도서관과 정원을 함께 조성해 산책하듯 묘지를 돌아볼 수 있는가였다. 실상을 파악해보니 사람들은 묘지에서조차 즐거움을 누리길 원했다. 그렇다면 뉴욕의 9·11 추모관에서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것과 그곳의 공원을 거니는 여유 사이에서 내 감정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수년 전 도쿄를 여행할 때 신주쿠역 길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노숙인을 봤고 그 이미지는 여태 선명하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속 아일랜드인 처녀 펠리시아는 미래(남자)를 찾아 런던으로 가지만 긴 여정 끝에 종이가방 하나에 살림을 챙겨 다니는 노숙인이 된다. 나의 아일랜드인 친구 루크는 서울의 길거리를 보며 “노숙인은 다 어디 갔어? 동냥하는 사람들은?” 하고 묻는다.   작가 하드윅은 미국 남부 켄터키 태생이지만 뉴욕을 흠모해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소설 속 뉴욕은 빛의 도시여야 할 텐데, 정반대로 녹슬고 사방에 덫이 놓인 데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호텔에 득시글대는 등 불운이 덧칠된 도시다. 냄새나고 소란스럽고 마약에 찌든 이 장소는 저자의 시적 문체에 힘입어 더 선명하게 잔인해지고, 공기는 더 역해진다.   하지만 그런 작가 수천수만 명이 사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이가 들끓는 침대에서 잤지만 그곳을 사랑해 절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은 예술로 뒤덮인 도시가 됐고, 나 역시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낼 것 같다.   끝으로 여행에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기다. 지금 나는 전기(前記)를 쓰고 있지만, 여행 후 다시 내 언어와 이미지로 가다듬어 단단한 글로 구축하고 싶다. 여행을 기억에 새기는 방식 중 하나는 글쓰기의 우회로를 통해서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여행자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이따금 그것들은 권위를 갖고 오랜 세월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고착화된 이미지는 다음번 여행자가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여행 예술가 여행 계획 도시 뉴욕 이번 여행

2023-09-04

[마음 읽기] 고갱의 그림 ‘우리는 누구인가’

태풍이 가고 습습한 법당에 향과 초를 켜놓고 고요히 앉아본다. 거센 비바람에 온몸을 흔들던 처마 끝 풍경처럼 어수선했던 마음을 따라가니, 거기 의문 하나가 남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라는.   그러다 문득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갱의 작품이다. 오래전, 인생을 논하며 한 스님이 내게 이 그림을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 기억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인생의 흐름을 묻게 하는 명작이다. 나처럼 그림에 문외한이어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작품 제목을 왼쪽 맨 위에 적어 놓았다. 나이 불문하고 모두가 느낄 만한 인생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그림에 깔려 있는 듯 보인다. 그림을 찾아보며 다시 또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 서 있을까?   어릴 땐 하루가 왜 그렇게 길던지 시간이 안 가서 강가의 해지는 노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덧 인생이 짧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변한 건 젊어서는 남이 내게 준 상처를 곱씹으며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대해 생각하고 후회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의 원인은 나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러니 좀 더 지혜롭게 살고 싶다.   출가자든 아니든 방향만 다를 뿐, 인간의 욕망에는 쉼이 없다. 가끔 자신은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세속적 잣대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진실이 아닐 공산이 크다. 초월한 듯 살아도 결국 그 이면에는 명예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생에서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살펴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얼마나 휘둘리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하고 불온한 감정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돌아보면 그런 어리석은 마음작용이 인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만 밀어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게 하고, 외면하고 회피하도록 말이다.   중국 당나라 때, 배휴(裵休)라는 불심 깊고 학식도 뛰어난 관리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절에 찾아왔다. 마침 그 절에는 돌아가신 옛 고승들의 초상화를 모신 작은 법당이 있었다. 배휴는 법당을 안내하는 주지 스님에게 “영정은 여기 있는데, 고승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당황한 주지 스님은 뒷방에서 참선하는 스님을 불러와 배휴를 응대하게 했다. 그때 등장한 뒷방 스님이 바로 황벽 선사다.   선사가 오자 배휴가 다시 물었다. “스님, 영정은 여기 있는데, 이 고승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그러자 황벽 선사가 호령하듯 말했다. “배휴여! 그러는 당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에 배휴는 대답하지 못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힘은 결국 근원적인 질문을 할 줄 아는 힘이며, 근원적인 것을 꿰뚫어 핵심을 파악하는 안목이다. 배휴가 자기 깐에는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고 했으나, 황벽 선사는 배휴가 서 있는 자리를 외려 꿰뚫어 되물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지금 어디 머물러 있느냐고.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객관화하여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은 쏙 빠져버리고 객관적인 척 남 이야기만 한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당연히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장년이 되면 주위의 친지들이 죽는 것을 보며, 부모도 친구도 이런저런 사유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점차 자기의 죽음에 대해 인식하면서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자기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그건 그렇고, 요즘엔 인공지능 얘기가 부쩍 많이 들린다. 뭣 모르는 내게는 AI가 주는 편리함보다 미래에 대한 공포감이 더 크다. 왠지 보이지 않은 거대한 시스템, 그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피동적으로 주어진 삶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주는 공포감이다. 무력감과 소외감마저 느끼며 나는 생각한다. 나를 추동하는 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나 자신인가? 아니면 외부의 보이지 않는 힘인가?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노예처럼 살아갈 것인가?   이제 우리 다시 한번 차분히 살펴보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나의 행동양식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선 자리를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일이다. “일 년 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은 단 이틀뿐이다. 하루는 ‘어제’이고 또 다른 하루는 ‘내일’이다. ‘오늘’이야말로 사랑하고 믿고 행동하고 살아가기에 최적의 날이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말씀처럼,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고갱 그림 스님 영정 뒷방 스님 오래전 인생

2023-08-18

[마음 읽기] 과거를 직시하는 책 정리법

나이가 많을수록 물건을 살 때 남은 삶을 헤아리며 신중을 기한다. 벌이가 쪼그라든 마당에 자연스레 줄이는 소비는 청빈한 삶도 안겨줘 일거양득이다. 책 역시 돈 주고 사는 물건인데, 소비욕이 별로 없는 나는 독서 계획도 없이 책만큼은 매일 사들인다(책을 읽기 때문에 소비욕이 덜한 것일 수도 있다. 독서에 좋은 옷 같은 건 필요 없으니). 특히 1000쪽이 넘는 과학, 철학, 역사책이 꽂힌 책장을 보면 예감한다. 죽을 때까지 저 책들을 읽을 일은 아마 없을 거라고. 그래서 최근 책 정리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좀 더 과거 지향적이고 주관적으로.   책 정리의 대전제는 분야별 분류로, 관심 주제나 작가를 찾을 때 편리하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 일반적인 방식이라 가끔 그 책장이 내 것이 아닌 듯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 생소함은 책 광고와 서평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입해 책 샀을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데서 기인하는 면도 있다. 자기 방에서 낯섦을 느끼는 것은 때로 유익하지만 때로는 기분을 해친다. 낯선 감정은 나 자신과 거리두기 하면서 젊은 시절 흘러넘쳤던 호기심과 열정을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당시 지적 욕구가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쳤음을 일깨워준다. 피상성은 늘 우리를 괴롭힌다. 그것은 자기기만의 결과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만에서 벗어나려고 2~3년 전부터 연도별 정리를 하고 있다.   이 방법은 앞으로 읽을 책들을 위한 열망과 충동을 조금 가라앉히고, 지난날들을 되새기게 한다. 내 책장 일부는 2021년, 2022년, 2023년에 읽은 책들이 한 줄씩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분야도 주제도 제각각인 그 책들은 나름의 이야기 망을 구성한다. 단지 같은 연도에 읽혔다는 이유로 한 칸에 놓였지만,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거나 지층 속으로 깊이 내려간 고유한 질문과 사유의 계보를 드러내 준다. 내 생각에 이것은 시간을 저장하는 좋은 방법인데, 과거의 시간은 얼마나 맥락화하는가에 따라 더 잘 기억되기 때문이다.   전년도의 축적은 이듬해의 반박과 도약의 좋은 토대가 되어준다. 지난해 나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글의 구조가 갖는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 책을 읽으면 독자는 작가가 구축한 구조에 붙들려 감탄하게 되는데, 이는 글쓰기 비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늘 강조하는 점으로, 조지 손더스 역시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체호프 글 구조의 ‘무서움’(탁월함)을 언급한다. 하지만 올해 나는 구조를 파괴하고 무정형으로 쓰인 뒤라스의 『물질적 삶』과 배수아의 『작별들 순간들』을 읽었다. 뒤라스는 “이 책엔 시작과 끝이 없고, 중간도 없다. 어느 책이든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이 맞는다면, 이 책은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놀라운 건 뒤라스의 의도와 달리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떠도는 시간의 공기가 독자를 북돋운다는 점이다. 즉 그 공기는 읽는 이의 마음속에 스며 안개 뭉치 같은 것을 형성하고 느낌을 강화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열도록 돕는다.   지난해 내 책꽂이의 절반은 소설로 채워졌다. 하지만 올해는 소설보다 역사와 철학책을 주로 읽고 있다. 한 분야를 집중해서 보면 그쪽 작가들의 작법이 짐작되곤 한다. 두 해쯤 SF소설에 빠졌지만, 유사하게 변주되는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와 상상력에서 다른 미래를 엿보기 힘들었다. 도약하는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며 지금 관심사는 다시 오랜 시간 축적된 연구와 역사적 세부 사항으로 향하게 됐다. 로스 킹의 『피렌체 서점 이야기』는 등장인물과 가문 이름 하나하나가 책과 지식을 향한 욕망과 분투를 되새기게 하는, 지적 집적의 아름다운 총체성이다. 이 책은 모든 장면이 세부를 파고들도록 자극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또 올 한 해 동안 독파하려고 계획한 『하이데거 극장』(전 2권)은 1600여 쪽이라 부담되지만, 철학의 계보를 좇으며 인식론과 인식론 너머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어떤 분야가 약간 정체된 듯 보일 때 독자가 변신을 꾀할 수 있는 대안적 출구는 늘 마련돼 있으며, 좋은 책은 꼭꼭 씹어서 앎이 삶이 되는 지점까지 나가도록 격려한다.   지나온 세월은 좁아진 혈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매해 읽어온 책들의 방향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남은 생이 30년이라면 나 같은 독자는 30칸 정도의 책꽂이를 간신히 채울 것이다. 30칸이면 작은 방 벽면 하나 차지하는 책장밖에 안 되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분야별 효율성과 효용성보다 자신을 직시하게 하는 방식으로 매년 책꽂이를 채우다 보면 비로소 나란 사람을 알게 된다. 그 얄팍함은 나를 전시하는 증거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거의 작위성과 짜임새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 자신을 느슨하게 만드는 면도 있는데, 그것은 나름의 열매라 할 수 있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정리법 연도별 분야별 분류로 독자 사이 역사적 세부

2023-07-02

[마음 읽기] 여름 초입의 시간을 살며

지난 일요일 아침에 제주 애월읍 한담해변을 산책했다. 하얀 목덜미의 파도가 멀리서 밀려와 부서지고 되돌아가고, 하얀 모래가 쌓인 백사장은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백사장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한 손에 들고 또 바짓단을 걷어서는 긴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나도 고운 모래알이 깔린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바닷물에 반복해서 적셔지고 이내 반복해서 마르는 발등을 내려 보면서 걸었다. 아이들은 모래를 파내거나 쌓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서퍼들도 더러 보였다. 파도 위에 올라서지 못해 곧바로 물에 빠지곤 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밀려올 파도를 다시 기다렸다.   산책하고 근처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노부부가 주인인 식당이었는데 가끔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식당 마당에 내놓은 들마루 한쪽에 작은 글씨로 뭔가 적혀 있었다. ‘뒷집 사는 두부예요. 심심해서 마실 나왔어요’라고 씌어 있었다. 여쭤보니 두부는 뒷집에 사는 강아지라고 했다. 뒷집 사람이 낮 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 두부가 이곳에 와서 있다가 간다고 했다. 두부는 아직 와 있지 않았지만 오늘 낮에, 또 앞으로 맞이할 여름날의 무료한 낮에 두부는 이곳으로 놀러 올 것이다. ‘심심해서’라는 글씨를 보았을 때 여름날의 낮의 뜨거운 일광(日光)과 바람 한 점 없는 대기의 정체와 그로 인한 나른함이 절로 느껴졌다. 식당 마당에는 채마밭이 딸려 있었는데 푸릇푸릇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밭쪽을 보았더니 이 밭 저 밭에서 벌써 옥수수가 익고 있었다. 옥수수의 끝에 엉켜있는 옥수수수염이 붉은 갈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떤 밭에서는 수박 넝쿨이 땅바닥을 기어가며 뻗고 있었다. 작년에 이 밭에서 갓 딴 수박을 산 적이 있었다. 하지가 내일모레이니 태양 아래 옥수수도 수박도 영글어 갈 것이다.   집에 와서는 장화를 신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모자를 머리에 얹어 텃밭에서 풀을 뽑았다. 토마토와 오이에 댔던 지지대를 더 큰 것으로 바꾸고, 가지에 북을 주었더니 온몸이 금세 땀으로 젖었다. 텃밭에 들어가 있으면 정말이지 흙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다양하고 드라마틱한지를 잘 느끼게 된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방울토마토를 땄고, 상추와 치커리와 방풍잎 등속을 거둬 찬물에 씻어 그릇에 담고 나니 해가 벌써 중천에 떴다. 작은 화단에는 올해에도 수국과 노란 낮달맞이꽃이 피었다. 시골에 사는 게 여전히 서툴지만 작년보다 기르는 가짓수가 늘었다. 여름을 위한 씨앗도 미리 준비할 줄을 알게도 되었다.   자연의 주체를 보다 가까이 접촉하는 일은 색다른 경험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시인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의 시 가운데 ‘거래’라는 시가 있다. 시는 이러하다. ‘우리 정원의 죽은 살구나무/ 서 있도록 받쳐주고/ 둥치를 감고 오를 담쟁이덩굴을 심었더니/ 곧 나무는 이파리로 뒤덮였네.// 이제/ 우리 살구나무는 푸르러./ 심지어 12월에도.// 이것이 거래:/ 죽음이 뿌리와 열매를 갖고/ 우리는 위조된 푸른 잎을 가졌지.’   정원에 살구나무가 고사한 채 서 있는 것을 보고선 담쟁이덩굴을 심어 그 덩굴이 죽은 살구나무의 둥치와 줄기를 타고 자라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구나무는 죽음 대신 뿌리와 열매를 갖게 되었고, 시인은 마치 그것이 살구나무의 것인 듯 푸른 잎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이 거래를 시인은 제법 훌륭하다고 여긴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거래는 죽음의 불모지를 푸른 생명의 빛으로 덮어 생명의 활발한 에너지를 우리의 살림 공간에 불어넣는 행위이기 때문일 테다.   자연의 오묘한 변화를 감각하는 일은 우리의 생활에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자극을 얻으려면 우리도 자연을 이루는 주체들의 변화를 자세히 보아야 한다. 류선열 시인은 동시집을 내면서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수백 가지 새나 들꽃의 이름을 지어낸 조상들을 위해 글을 쓰자. 냉이꽃이건 산수유건 노란꽃이라 하고 피라미건 배가사리건 그냥 물고기라고만 부르는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자.’ 냉이꽃은 냉이꽃으로, 산수유는 산수유로, 피라미는 피라미로, 배가사리는 배가사리로, 그렇게 각각 이름으로 호명해야 하고 또 개별적인 움직임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비둘기가 울고, 뻐꾸기가 이어서 울고, 옥수수가 익어가고, 수박 넝쿨이 땅을 기어가고, 해바라기의 키가 커가고, 대낮의 시간이 길어지고, 목에 두른 수건이 흠뻑 젖어 있으니, 이즈음을 여름의 얼굴이 설핏설핏 보이는 때라고 해야겠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여름 초입 여름 초입 우리 살구나무 냉이꽃이건 산수유건

2023-06-19

[마음 읽기] 더 열심히 웃어야겠다

얼마 전에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수덕사에 다녀왔다. 평소에 모시던 도신 스님의 수덕사 주지 취임식이 있었다. 도신 스님은 ‘노래하는 수행자’로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은 여덟 살 나이에 수덕사로 입산해 인곡당 법장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그동안 정규 앨범 발매는 물론 많은 공연을 하셨다. 스님은 시를 창작하고, 또 등단한 후 시집도 발간하셨다. 나는 스님의 시편을 읽을 때마다 범종 소리가 울려 퍼져오는 것을 느꼈다.   취임식에서 덕숭총림 방장인 달하 우송 대종사의 법문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 감명적이었다. 스님은 절의 주지 소임이 “문수보살의 큰 지혜, 보현보살의 큰 행원으로 마당을 쓸고, 설거지하고, 웃어주고, 손을 잡아 주는 데에 솔선수범하는 것이 주지의 일입니다. 생명의 뿌리를 찾아주는 일이 주지의 역할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수행자가 사는 곳은 지심(至心)이라고 강조하셨다.   주지의 소임 자리가 낮은 곳에 있고, 보살피고 모시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요, 수행자의 본분은 더없이 성실하고 또 한결같은 일심(一心)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이 말씀이 주지 소임을 시작하는 도신 스님에게 들려주는 당부이지만, 참석한 대중 또한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가해와 하대가 빈번한 이 세태에 울리는 경종으로 여겨졌다.   도신 스님의 시 가운데 ‘꽉 찬 빈 그릇’이라는 시가 있다. ‘그때도/ 여름이었어/ 비도 내리고// 쌀이 귀하던 시절/ 그게 들어온 거야// 노스님 밥 지어/ 동자들과/ 공양했는데// 노스님은/ 숟가락 소리만 컸어// 빈 그릇을/ 꿀밥처럼 드신 거지// 노스님 가시고/ 삼십여 년/ 쌀밥 보니 눈물 나네// 동자들/ 쌀밥 먹이고/ 누룽지 긁으셨대/ 참 나// 그 사랑 때문에/ 함부로 못 살았어/ 그럴 수밖에…’   이 시는 노스님의 일화를 시로 쓴 것일 텐데, 쌀이 귀하던 때에 절에 쌀이 들어와 밥을 지어 어린 동자들을 먼저 먹이고 자신은 누룽지를 긁어먹어 허기를 해결한 노스님의 그 모습이야말로 바로 하심(下心)의 구현이요, 또한 생명의 뿌리를 찾아주는 귀한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나는 도신 스님을 뵐 때마다 이런저런 말씀을 듣게 된다. 가령 스님께서는 “여기 빈 잔이 있다고 하면, 그걸 바람으로 채우면 굳이 비우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나 물질이나 욕심으로 채우면 그걸 비워야 빈 잔이 됩니다. 비울 일이 없어야 잠도 깊이 잡니다. 또 마음이라는 것도 그래요.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은 불이 잘 붙습니다”라고 어느 날에 내게 일러주셨다.   나는 이 말씀을 듣고서 무욕과 허심, 호의와 관대함, 그리고 고요하게 제어한 마음을 지니는 것에 대해 여러 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궁리했다. 아마도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은 분노가 많은 사람, 덜 유연한 사람, 어떤 여지가 적은 사람, 자기중심의 아집이 많은 사람,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한 사람은 대개 그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태우게 될 것이다. 마음을 태우므로 스스로 자초하여 불행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특히 화를 내는 일에 대해 불교에서는 한순간 화를 내게 되면 마음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며 각별히 경계한다.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이 될 것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도신 스님은 최근에 첫 산문집을 펴내셨다. 산문집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긴 시간을 거쳐 웃는 것을 익히고 닦았습니다. 드디어 내가 웃자 나무들이 춤을 추었습니다. 아무리 두터운 어둠일지라도 내가 웃으면 그곳에 반짝이는 별이 생깁니다. 별은 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워 어둠을 소멸시켰습니다. 아, 내가 웃어야 별이 빛난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웃어야 별이 빛난다는 문장은 웃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가 웃는 사람이 되고, 내가 웃는 사람이 되면 관계하는 존재도 함께 웃는 존재가 된다는 뜻일 테다. 내가 존엄한 존재임을 알되 내가 이 생명 세계 존재의 안락과 행복을 보호하고 가꿔야 한다는 뜻일 테다. 인용한 문장에서도 드러나 있는 것처럼 도신 스님은 웃는 연습을 할 것을 자주 강조하신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의 마음일세.” 불교의 말씀 가운데 나는 이 말씀을 특별하게 좋아한다. 이해하기로는 쉽지만,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거리에 내걸린 연등을 바라보면서 겸손하게 모든 존재를 대하고, 다른 생명의 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워본다. 생활하면서 웃는 연습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주지 노스 도신 스님 주지 소임 말씀 가운데

2023-05-21

[마음 읽기] 금은처럼 반짝이는 일상의 음악

봄날이 되니 문득문득 고향 김천이 눈에 선하다. 옛날에 고향에서 보고 들은 것도 함께 보인다. 꽃 핀 앵두나무, 풀이 돋은 동산, 외할머니의 나직한 음성, 들판으로 난 길, 저수지와 돌돌 흐르는 시냇물, 경운기 소리, 새와 염소의 울음소리, 막 뜯어온 산나물을 삶느라 아궁이에 불을 때는 소리, 소를 몰고 돌아오는 저녁 등이 눈에 보이고 또 들린다. 나른하고 평화로웠던 봄의 시간이 보인다.   이상국 시인의 시집에서 만난 시 ‘봄날 옛집에 가다’를 읽을 적에는 고향 생각에 마음이 더 애틋했다.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며/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파 껍질 속 같은 엷은 그늘에서 마른 옷가지를 접어 포개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더없이 평온해 보인다. 바쁘다는 핑계로, 멀다는 구실로 자주 찾아오지 못한 옛집에서 원추리꽃으로부터 한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옛집에 묵으며 보낸 봄밤은 시인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봄의 기운이 뚜렷하니 이 세계의 움직임도 부쩍 활발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사는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의 아침도 보다 극적이다. 그저께는 바람이 한 점 없어 나무들의 가지와 잎들이 미동도 없이 고요한 상태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며칠 전에 심은 상추와 토마토와 가지의 모종들이 그 실뿌리를 땅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내리는 소리조차 들릴 것만 같았다.   반면에 꿩과 직박구리와 닭의 울음소리가 숲과 마당으로부터 크게 들려왔다. 일찍 일어난 이웃집 사람들이 주고받는 밝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막 해는 떠오르고 있었고, 이 세계의 소리가 금은(金銀)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봄날 아침에 이렇게 많은 소리가 살고 있었다니 놀랄 정도였다. 나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이 소리를 금은처럼 귀하게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우리의 일상은 많은 소리로 이뤄져 있다. 어떤 소리는 곱고 어떤 소리는 거칠다. 어떤 소리는 메아리를 만들면서 멀리 가고, 어떤 소리는 떨어진 단추처럼 툭, 아래로 곧바로 직하한다. 어떤 소리는 급하고, 어떤 소리는 느긋하다. 그러나 이 각각의 소리는 생명 세계의 현상에서 탄생한 것이다. 생명의 음악이다.   일상의 소리를 음악으로 끌어들인 음악가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있다. 그는 얼마 전 별세했다. 나는 그의 부음을 듣고 여러 날 그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그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영화 ‘남한산성’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었던, 세계적인 음악가였다.   그의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내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인간 세계나 현재의 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보다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조작하거나 조립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가만가만 늘어놓고 찬찬히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꽤 오래전에 그의 음악 세계와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양동이를 뒤집어쓰고서 빗소리를 채집하고, 빙하가 녹아 흘러가는 물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리를 음악 속에 넣고자 했다. 그에게는 소음과 음악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소리가 많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빗소리겠죠. 세상에는 정말이지 너무 많은 소리가 넘쳐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인간이 만든 음악이 없어도 주변에 존재하는 소리만 즐기면서도 살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만큼이나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산다는 게 매우 즐겁습니다.”   내 귓가에 아직도 맴도는 정겨운 소리가 여럿 있다. 동산에서 또래들과 노느라 서산으로 해 떨어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밥 먹을 때가 되었다고 누나가 나의 이름을 길게 부르던 소리며 어머니께서 수확한 팥을 차르륵 키질하는 소리며 하얀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는 소리며 빈 마당에 들어서던 신발 끄는 소리며 바람에 댓잎이 서걱대는 소리 등은 내 머릿속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는 회전하는 것이 굉장히 많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자연 속에서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이 봄날에 생명 세계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봄날을 구성하는 소리를 유심하게 들어보아도 좋겠다. 금은 같은 생명의 소리를, 일상의 음악을 말이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음악 금은 음악 세계 주변 소리 생명 세계

2023-04-23

[마음 읽기] 못생긴 외모에 관하여

지난주 어떤 커플의 결혼식에 갔다가 거슬리는 말을 들었다. 하객들이 “여자는 예쁜데 남자는 못생겼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선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내 주변에선 체감상 오히려 늘고 있다. 한 어른은 함께 길을 걷다 뚱뚱한 사람이 지나가면 “어휴 답답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어머, 그러시면 안 돼요”라며 놀라서 말려봤지만 “보기만 해도 숨이 안 쉬어지는 걸 어떡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한 출판사 대표는 “외모도 실력”이라고 말한 적 있다. 지배 체제의 생각과 합일된 이런 말은 듣는 이에게 상처로 남는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권력을 갖는지도 모르는 채 말하고, 그 말들이 모여 누군가가 조형된다. 말하지 않으면 생각도 그쪽으로 내닫지 않을 텐데 ‘보이는 것’에 즉각 반응함으로써 인간은 시선의 권력을 누린다.   외모의 우월성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알다시피 고대까지 거슬러간다.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더 정확하고 세밀히 복원해내려 시도한 아먼드 댕거의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서두를 “이 비범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는 항상 가난하고 늙었으며 못생겼다”는 대중의 통념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저자는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가 실은 매력적인 외모로 동성과 이성에게 두루 로맨틱한 사랑의 대상이 될 만했다고 말한다. 노년에 외모가 좀 흉측해진 건 갑상선항진증을 앓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저자의 추정이다. 소크라테스를 언급한 동시대 작가들의 글은 그의 외양 묘사를 빼놓지 않는데, 특히 당대의 관상학자 조피로스는 소크라테스의 쇄골이 움푹 파이지 않아 ‘바보 같고 머리가 둔하다’고 했다. 반면 소크라테스와 애틋한 관계였던 청년 알키비아데스는 잘생겨서 자신감이 넘친 까닭에 주사위 놀이를 할 때 마차가 다가와도 피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나의 주제로 인간의 역사를 서술하는 관습은 전통이 깊지만, 외모만큼 끈질기게 인간사를 지배하는 것도 없는 듯하다(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외모 때문에 생기는 무례와 경멸을 퇴치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 점은 소설가들이 캐릭터를 창안할 때도 작용한다. 디노 부차티는 『타타르인의 사막』에서 주인공 드로고에 대해 ‘그는 한 번도 잘생겨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서, 군인으로서 변변찮은 이력이 외모와 그로 인한 성격 형성에서 비롯됐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윌리엄 트레버의 『펠리시아의 여정』에서 펠리시아를 병적으로 괴롭히는 남자 주인공은 뚱뚱하고 눈이 단춧구멍만 한 사람이다. 범죄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는 캐릭터의 외모와 그로 인해 뒤틀린 심사를 활용한다.   신혼 시절 나는 시댁에서 이런 말을 몇 번 들었다. “발이 정말 크구나!” 29년간 정상이었던 내 발은 다른 공간 속에서 위상이 추락했다. 옛 시대에 큰 발은 하녀들이나 갖는 것이었다. 요즘도 여자 연예인들의 발이 크면 남자들이 놀려 당사자들은 이를 감추려 한다. 중국 여성들은 수백 년간 남성들의 발 페티시즘 때문에 전족을 했고, 그 시절 발은 ‘얼굴’이자 성품의 표지판이었다. 그들은 시집가기 위해 띠로 발을 동여맸지만, 근대에 들어 전족한 여성은 갑자기 경제력 없는 기생충 취급을 받았고, 이에 여성들은 띠를 풀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뒤뚱뒤뚱 걸었다.   공자도 언젠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사람의 내면을 더 중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나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거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성마른 비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도덕적 일갈은 쉽지만 공허하다. 다만 아도르노의 말처럼 “현실 속에 편입된 미는 현 존재의 계산 가능한 요소로 전락”했고, 차별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언제나 타인을 대상화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니 차라리 자기 얼굴을 논하자. 이건 거울 많이 보고 성형수술을 해 관리를 잘하자는 말이 아니다. 철학자 김영민은 “얼굴에 윤리가 개입한다”면서 얼굴을 하나의 ‘깨달음의 장소’로 인식했다. 늘 시선의 바깥에 놓여 자신은 짐작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인상과 표정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내 가족 한 명은 인상이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다. 나는 그 얼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안다. 밥 먹고 얻은 에너지가 주변으로 흘러넘쳐 타인을 세심히 살피는 게 그의 특기일 뿐 아니라 자신도 잘 돌본다. 매일 아침 운동하며 만나는 한 노년의 여성은 직업으로 아기들을 돌보느라 밤잠을 설치지만, 그 얼굴은 아기처럼 부드럽고 귀엽기까지 하다. 잠 덜 깬 내 몸은 운동할 힘을 자주 그녀의 얼굴에서 구한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외모 민주주의도 외모 시절 소크라테스 반면 소크라테스

2022-09-23

[마음 읽기] 결혼을 꿈꾸는 이들에게

2012년 7월, 해남 땅끝 미황사에서 ‘청년출가학교’라고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때 나는 법인 스님·금강 스님과 함께 8박 9일 동안 지도법사로 참여했다. 최종 41명만 선발됐지만, 당시 지원자가 무려 272명이나 있었을 정도로 꽤 인기가 많았다. 그해 여름은 청년들이 가졌던 고뇌의 열정 또한 뜨거웠던 모양이다.   10년이 지난 얼마 전, 청년출가학교 때 함께했던 한 청년이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과 함께 청룡암에 찾아왔다. 이제는 ‘1+1’이 된 것이다. 그리고 청하기를,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요. 스님, 주례를 좀 서주세요” 했다. 허 참! 장례식장도 아니고 결혼식장에 와 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아직 젊은 독신 비구니에게, 뭐? 주례를?   순간 결혼식장의 아찔한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아, 이건 쫌! 당혹감을 농담으로 감추고는 다시 생각해 보라며 만류했다. 우리는 각자 한 달의 기한을 두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만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이 다 좋다고 하면, 그땐 나도 거절하지 않고 주례를 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후,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주위에서 다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달리 먹는 수밖에. “그래 뭐, 생각해보니 독신 비구니 스님이라고 장례식만 가라는 법은 없지, 결혼식에도 가서 행복한 가정의 탄생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언약을 보증하는 증명법사가 되어주면 좋지. 아니, 이참에 그냥 주례 전문 스님으로 나서볼까? 하하하.”   드디어 지난 일요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신랑 신부 못지않게 긴장한 상태로 생애 첫 주례를 섰다. 가기 전 머릿속을 헤집던 아찔한 풍경도 지금은 행복한 여운으로 가득하다. 아마 남은 생 동안 나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때때로 기도할 것이다. 새 가정을 이룬 그들의 수호자가 되어 일생 내내 틈틈이 빌고 또 빌어 주리라.   그간 주례를 약속한 후, 누가 어떻게 결혼을 하는지, 주례는 누가 서는지, 무슨 말을 남겼는지 등등 관심이 커졌다. 일생 관심 밖이던 ‘결혼’에 대해 참 많이도 생각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이유로 헤어지는지, 왜 결혼은 어렵고 이혼은 쉽게 하는지, 독신이나 비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절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고향 마을에서는 비구니가 된다는 것에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여학생이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겠다 하니, 어머니는 가슴을 쳤고 아버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무셨다. 주위 어른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쑥덕거리며 비난을 쏟아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인연을 끊어낸 것이 아니라, 매몰차게 끊어낸 쪽은 외려 가족들과 이웃들이었다.   출가하겠다는 여성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1990년 당시를 떠올려 보면, 여자가 일생 독신으로 산다고 하면 뭐 크게 하자 있는 사람이겠거니 할 정도로 섬뜩한 선입견이 주변에 수시로 작동했다. 30년 전만 해도 독신 여성에게는 위협적인 비난과 편견이 늘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하면 지금이야 주변 반응이 그나마 괜찮다. 결혼적령기의 남녀는 서로 합의로 혼인을 하고 가정을 구성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젠 비혼이건 독신이건 상관없다는 생각, 결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 삶의 형태가 결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된 듯하다.   사실 결혼적령기가 되면 이제 다 성인인데,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누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삶에 끼어들거나 간섭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만들곤 한다. 더군다나 결혼연령이 점점 더 늦어지는 추세라서 이제는 ‘결혼적령기’라는 말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절에 오시는 보살님들도 자식들이 나이는 상관없으니 언제라도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바라거나, 그도 아니라면 편하게라도 살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바람보다도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첫 주례 기념으로 오늘은 결혼을 꿈꾸거나 결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덧붙일까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충분히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이러한 우리가 아득히 먼 시간부터 서로를 그리며 찾아와 이 땅에서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면, 수천생의 인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담아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도 정성으로 대하십시오.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생 온화한 부부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결혼 독신 생각 결혼 순간 결혼식장 사실 결혼적령기

2022-06-26

[마음 읽기]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다르다는 말씀

하지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해가 높이 뜨고 낮이 길어졌다. 날씨도 무더워졌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의 얘기로는 벌써 바위가 뜨거워 암벽을 오르기가 어려워졌다고도 한다. 장마를 앞두고 있지만, 장마가 지나면 더위가 본격화할 것이다.   해가 이처럼 좋으니 숲도 들도 짙푸르게 무성하다. 마당의 끝과 둘레에 심은 수국이 피고 낮달맞이꽃도 노란 꽃이 피었다. 수국이 핀 것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신비한 천체 같은 느낌이 든다. 달맞이꽃이 해가 지는 밤에 달을 따라 핀다면, 낮달맞이꽃은 낮에 피는 야생화다. 보들보들한 꽃잎에 윤기가 돌고 낮달맞이꽃이 핀 마당가는 아주 근사하게 맑고 밝다. 해바라기도 제법 커져 여물고 있다. 머잖아 원반 같은 그 노란 꽃이 피어 태양을 사모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멀구슬나무는 이미 꽃이 지나갔다. 연보라빛 꽃이 피는데 이 멀구슬나무 꽃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 ‘전가만춘(田家晩春)’에 이런 시구가 있다.   ‘비 그쳐 방죽에 서늘한 기운이 깔리고/ 멀구슬 꽃 바람 잦아들자 해가 점점 길어진다./ 하룻밤 새 보리 이삭이 모두 뽑혀/ 평원의 푸른빛이 줄었구나.’   익은 보리를 거둬들이는 늦봄의 농가 풍경을 노래하면서 정약용도 이 멀구슬나무를 언급했다.   제주에서는 완두콩이 보리 익을 때 익는다고 해서 보리콩이라고도 부르는데, 나도 얼마 전 보리콩 콩깍지를 까서 몇 바가지의 보리콩을 얻었다. 좀 늦게 거둬들인 탓에 빈 콩깍지가 많았지만 그래도 요즘 보리콩을 얹어 밥을 지어 먹는 재미가 남다르다.   농사랄 것도 없지만 텃밭에 이것저것을 심어 내 손으로 키운 것을 내가 먹는 일도 시골 사람이 된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상추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받아먹기 어렵고, 오이도 남아돌아 사람들에게 나눠줄 정도다. 특히 오이는 아침에 보았을 때는 좀 작은가 싶더니 낮 동안에 굵어져 저녁에는 딸 정도로 성숙이 빠르다. 텃밭에서 얻은 것을 씻어와 툇마루에 밥상을 차려 간소하게 먹으니 이로써 한가한 마음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각각의 꽃 피는 것을 보게 되지만 각각의 꽃 지는 것 또한 보게 된다. 하지만 대개는 개화만을 보려고 하고 낙화에는 마음을 덜 두게 된다. 마치 오는 이를 마중 가는 일은 모두 반기지만 정이 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배웅은 매번 어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낙화와 배웅을 피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는 일의 절반은 각각의 낙화를 보는 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한 스님을 뵈었더니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달라요”라는 말씀을 내게 하셨다. 스님과 인연이 있는 어떤 분이 슬픈 일을 당하여 크게 상심을 해 힘들어하기에 이 말을 들려줬다고 하셨다. 고통의 일과 이별의 일과 죽음의 일을 꽃 지는 때에 빗대어서 하신 말씀일 텐데, 이 말씀이 내내 마음에 맴돌았다. 벚꽃은 이른 봄에 피어 있다가 지고, 감꽃은 좀 더 늦은 때에 피어 있다가 지는데, 감꽃이 벚꽃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듯이 저마다 때를 각각 맞아 겪는 일에 큰 낙담을 하지 마시라는 조언이 담겨 있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누군가가 찾아 왔다 떠나가는 일에 꽤 마음이 쓰였던 내게도 마음의 처방전처럼 여겨졌다. 오면 가게 되고, 가면 또다시 오게 될 것이다. 이른 때에 오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오는 사람도 있으나 이른 때에 오는 사람은 먼저 가게 될 것이요, 뒤늦게 온 사람은 그 떠나감이 보다 지난 후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 제때에 하는 일이라고 여길 뿐인 것이다.   ‘풀을 뽑으러 와서/ 풀을 뽑지는 않고// 보고 듣는/ 풀의 춤/ 풀의 말// 이러하나 저러하나/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수줍어하며/ 그러하다는/ 풀의 춤/ 풀의 말// 기쁜 햇살에게도/ 반걸음/ 바람에도/ 반걸음// 풀을 뽑으러 와서/ 차마 풀을 뽑지는 못하고.’   이 시는 최근에 쓴 내 졸시 ‘풀’의 전문이다. 풀을 뽑으려고 나섰다가 풀을 가만히 보았더니 그 움직임이 햇빛 쪽으로 기울었다가 또 어느새 바람에 눕듯이 기울었다 하는 것이었다. 마치 반걸음을 떼는 것처럼 흔들렸는데 어느 쪽으로든 완전히 기울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러하거나 저러하거나 어느 한쪽에 근심이 다 쏟아지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낙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세가 사는 일에도 지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꽃들은 피고 꽃들은 지고, 물 가듯 흐르는 자연의 일에서 또 배운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벚꽃과 감꽃 벚꽃과 감꽃 보리콩 콩깍지 요즘 보리콩

2022-06-20

[마음 읽기] 눈보라와 무공용

 최근에 제주에도 한파가 몰아쳤다. 눈보라도 연일 쳤다. 세상이 겨울 들판 같았다. 눈보라가 칠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찼다. 그것은 마치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서 흐르는 월파(越波) 같았다. 눈보라 뒤에는 또 눈보라가 따라왔다. 나는 언젠가 아득하게 너른 들판을 지나가는 눈보라를 한참을 바라보았던 때가 있었다.   눈보라에 대한 느낌은 졸시 ‘눈보라’를 통해서도 쓴 적이 있다. “들판에서 눈보라를 만나 눈보라를 보내네/ 시외버스 가듯 가는 눈보라/ 한 편의 이야기 같은 눈보라/ 이 넓이여, 펼친 넓이여/ 누군가의 가슴속 같은 넓이여/ 헝클어진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고독한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기다리는 사람이 가네/ 눈사람이 가네/ 눈보라 뒤에 눈보라가 가네”라고 썼다. 정말이지 눈보라는 앞뒤 사정이 많은 한 사람의, 신산한 세상살이 같기도 하고, 우리가 가끔 갖게 되는 쓸쓸한 내면의 풍경 같기도 하다. 눈보라는 치지만 한쪽에는 핀 꽃이 또 있어서, 눈 속에서 동백은 더 붉고 한라봉 열매는 더 샛노랗다. 쌓인 눈을 밀어내고 나면 또 눈이 와 덮였다.     공터에서 엄마와 아이가 눈사람을 만드는 것을 보기도 했다. 두 개의 눈덩이를 굴려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서는 귤껍질을 이용해 눈과 코와 입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꽂아 팔을 만들어 놓고서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절로 흡족하고 내 마음이 양지처럼 밝고 따뜻해졌다.     지붕에 쌓인 눈들은 처마 아래로 털썩털썩 떨어져 내리고, 그때마다 눈이 좋아 마당에 나와 뛰고 있던 강아지는 깜짝깜짝 놀라워했다. 물론 강아지는 곧 잊고 다시 흰 눈 위에 앙증맞은 발자국을 찍으며 뛰어갔다 뛰어왔지만. 처마 끝에는 고드름도 달렸다. 고드름을 얼마 만에 다시 보는 거야, 라고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눈을 치우다 몸이 지치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눈 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다시 기운이 나면 또 나가서 눈을 치웠다. 눈보라가 성가시다는 생각조차 잊고서. 며칠 동안 무언가를 한다는 의식 없이 눈세상 속에서 살았는데, 밤이면 아주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 속으로 이처럼 빨리 깨끗하게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을 왜 대개는 혼미하게 잠이 들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무공용(無功用)’이라는 말이 있다. 무공용은 어떠한 조작이나 작위 없이, 차별이나 분별이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 그대로에 맡긴다는 뜻이다. 작고한 이승훈 시인의 유고시집을 평하면서 송준영 시인도 이 말로 이승훈 시인의 시 세계를 해석했다. 이승훈 시인의 시 가운데 ‘그저 있을 뿐이다’라는 제목의 시는 다음과 같다. “산에 붙은 것도 아니고 산에서 튀어나온 것도 아니다. 오 산사 보고 절한다. 눈이 오기 때문이다. ‘저게 산이야? 산이 아니야?’ 절 앞에서 눈발 맞으며 묻는다. 그저 있을 뿐이다. 모두 그저 있을 뿐이다.”   시인은 산에 갔다가 산사 앞에 이르러 묻는다. 산사는 산이라고 해야 하는지 산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지를.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산사는 그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냥 그곳에, 그 자체로, 그 상태 그대로 줄곧 있다는 것을. 이 시에서처럼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무공용의 가치를 따르는 일일 테다. 신기할 것도 없이 그대로 그렇게 모든 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 테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옛일에 대해서도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아쉬움이 남더라도 아쉬운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별문제가 없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게도 한 해가 다 가니 이러하고 저러한 일들이 생각나지만, 무공용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선 한 해를 떠나보내 보는 것이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눈보라 무공용 이승훈 시인 송준영 시인 겨울 들판

2022-01-05

[마음 읽기] 오늘은 내가 문화유산 지킴이

어려서부터 눈이 많이 안 좋았던 나는 항상 밝은 곳을 찾았다. 심지어 하늘 가득 별이 총총한 시골의 밤조차도 싫었다. 밤이 되면 꼼짝없이 어둠에 갇힌 듯 나는 늘 무서웠다. 그런데 절에 들어와 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골집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처음 스님 따라 들어가 살던 토굴도, 몸이 아파 머물렀던 산속 절도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워서 곧잘 침착함을 잃었다. 해진 뒤에 해우소(화장실)라도 한번 갈라치면, 깜깜한 도량(절 경내)에서 만나는 것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아니면 귀신인지 확인하려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때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밝은 곳으로 나가 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산한 지 30년이 넘도록 내 맘에 들게 밝은 도량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큰 도량이라고 해서, 문화재가 있는 고찰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년을 이어온 아름다운 문화재일수록 융통성이 없어서 더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아름다움 이면에 겪어야 하는 출가자의 불편은 어느새 수행이란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었다. 물론 그것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감내해야 할 불편함이라는 것도 잘 안다. 다만 전통의 기반 위에 오랜 세월동안 그것을 지켜내 오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교토에 살 때, 고류지(광륭사)의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일본 국보1호)을 보러 가곤 했다. 반가사유상은 교토에 사는 사람이라면 절대 한 번만 보고 말 수 없는 아름다운 문화재다. 어떻게 이런 미소를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결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가져갔다는 설도 있고, 우리나라 나무(적송)를 구해 일본에서 조성했다는 설도 있어 여러모로 내겐 친근한 보살상이었다.   반가사유상을 처음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찬바람이 불어 절은 썰렁했고, 법당은 어두컴컴했다. 마침 날씨까지 흐리고 삭막해서 이런 날 보기엔 너무 어두운 조명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도가 낮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래도 보살상의 미소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도록 얼굴 조명을 따로 설치해 놓았다.   드디어 마주한 미륵반가사유상, 그야말로 넋을 홀랑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순백의 부처님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 심오하고도 신비로운 미소에 반해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 앞에 서있었는지 모른다. 눈물이 났다.   20여 년 전 처음 갔을 때만 해도 그렇게 미소만큼은 선명하게 볼 수 있게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몇 해 뒤엔 그마저도 없애고 보살상 전체를 비추는 은은한 조명만이 남아있었다. 당시 그 절 비구니 스님과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는데, 어쨌든 나무가 상할까봐 얼굴 조명을 없앴다고 들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그 미소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몹시 아쉬웠으나, 문화재를 아끼는 마음은 오히려 장하고 귀히 여겨졌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절에는 반가사유상 못지않은 아름다운 불상과 탑이 많다. 절뿐만 아니라, 임야까지 포함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곳도 적지 않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합천 해인사만 해도 해인사를 포함한 가야산 일원 1000만평이 모두 ‘명승 62호’로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재다. 임야까지 문화재일 줄은 아마 대다수 국민들이 몰랐을 것이다.   양산 내원사 살 때, 천성산이 참 좋았다. 이른 아침 포행(산책) 다니면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곤 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그저 산이 좋아서, 비닐 하나도 산자락에 끼어있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한 스님이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도 이리 고운데, 다음 생에 얼마나 더 예쁘게 태어나려고 그리 쓰레기를 줍나? 안 되겠다. 나도 주워야겠네.” 아침마다 함께 쓰레기를 주웠다.   스님들은 절에서 수행만 하지 않는다. 도량 정비에, 산 지킴이까지 할 일이 참 많다. 물론 절도 스님도 나름 나름이겠지만, 대체로 변화무쌍한 자연에 휘둘리지 않고 문화재를 지켜내려 소임을 다한다.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와 불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한국은 이제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서울은 어느덧 미래 도시로 인식된다. K팝, K드라마 등이 세계문화에 영향을 끼친단다. 그 근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에 있다. 특히 1700여년을 이어온 한국의 불교문화에 깊은 영향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음과 사물이 따로 존재할 수 없듯, 한국불교는 이미 종교를 넘어 우리의 전통문화요 역사이며,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이란 사실을 부디 기억했으면 좋겠다. 원영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문화유산 지킴이 문화유산 지킴이 우리 문화재 얼굴 조명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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